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피트 로즈 (문단 편집) === [[신시내티 레즈]]: 빅 레드 머신의 일원 === [[파일:PRose.jpg]] 1960년 첫해 마이너리그에서는 그리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했지만 이듬해부터는 타격에 눈을 떠 타격왕, 최다 안타, 최다 3루타 등의 기록을 세우면서 자신의 진가를 알린다.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허슬 플레이를 서슴치 않는 적극적인 플레이를 했다. [[뉴욕 양키즈]]와의 스프링캠프 연습경기에서 그는 볼넷을 얻었는데, 그 때 상대 투수는 [[화이티 포드]]. 포드는 볼넷을 얻고서도 전력질주하는 그에게 '''찰리 허슬'''이라는 별명을 붙혔다. 1963년 주전이었던 돈 블레이징게임[* 아시아 야구 팬들에게는 '돈 블레이저'라는 별명이 더 잘 알려졌을 것이다. 나중에 일본에서 그 별명을 등록명으로 [[난카이 호크스]]에서 1967~1969시즌까지 뛰었고, 이후 난카이에서 코치를 지낸 것을 시작으로 1979~80년 [[한신 타이거즈]], 81~82년 [[난카이 호크스]]의 감독을 맡는 등 동양 야구에서 오래 지도자 생활을 했다. [[노무라 카츠야]], [[히로오카 타츠로]] 등에게 당시의 메이저리그식 훈련이나 작전 등 '선진 야구' 문물을 전수해주었다고.]의 부상으로 비어있는 2루수의 자리를 꿰찼다. 1963년 4월 13일 그는 피츠버그의 밥 프렌드를 상대로 3루타를 때리면서 통산 첫 안타를 신고했고, 그 기세를 앞세워 .273 .334 .371 6홈런 13도루 41타점 170안타를 기록하면서 신인왕에 오른다. 이후 신시내티에서 13번이나 3할을 기록했으며, 9번이나 200안타를 기록하면서 그의 진가를 알렸다. 1965년에 처음으로 올스타전에 출전한 이래로 1966년과 1972년을 제외하면 꾸준히 올스타전에 출석할 정도로 그의 인기는 대단했다.[* 1973년부터 1982년까지 10년 연속 올스타전 출전이라는 기록을 세우고 있다.] 데뷔는 2루수로 시작했지만 이후 그는 우익수와 좌익수를 번갈아가며 맡았으며, 75년부터는 3루수로 다시 포지션을 바꾸었다. 그러나 잦은 포지션 변화에도 불구하고 그는 꾸준했다. 그는 1970년대 최고의 타자였으며, [[자니 벤치]], [[조 모건]], [[토니 페레즈]]와 함께 신시내티의 최전성기였던 빅 레드 머신을 이끌던 선봉장이었다. 그는 1975년과 1976년 월드시리즈 2연패에 기여했을 정도로 신시내티에서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선수였다. 1978년 5월 5일 몬트리올의 스티브 로저스에게서 통산 3000번째 안타를 뽑아냈다. 그리고 6월 14일 컵스전으로 시작하여 7월 31일까지 44경기 연속 안타라는 진기록을 세우게 된다. 그는 연속 안타기록을 이어가기 위해 필라델피아와의 경기에서는 9회에 기습 번트를 통해 내야 안타를 만들 정도였다. 그러나 그의 근성있는 플레이가 부정적인 결과도 상당히 많이 만들어냈는데, 대표적으로 1970년 올스타전에서 AL팀 포수 레이 포세와 홈에서 충돌하여 포세의 오른 어깨에 부상을 안겼다. 이로 인해 포세는 선수 생활 내내 부상을 안고 살았으며 불과 30살의 나이에 은퇴를 해야 했다. 비록 그의 플레이가 야구에서 정당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이벤트전에서 과한 승부욕을 보였다는 점에서는 후에 많은 비판을 받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